사라예보 사건은 제1차 세계대전의 원인이 된 사건이다. 극적인 사건이었고 정말로 우연의 연속이라고 할 만한 사건이라 갖가지 역사적 가정이 가능하다. 당장 사건 당일에도 암살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을 분기점 5가지를 소개하겠다.
사라예보 사건 5가지 우연의 연속
역사에 우연이 없다고는 하지만 황당하게도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5가지의 우연이 완벽하게 겹쳐져서 사망하였다. 만약 이 5가지의 우연들 중 단 하나라도 실패했다면 어찌 되었을지 궁금해지는 일이다. 당시 방탄조끼가 등장했던 시기였고 그는 방탄조끼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두 발의 총탄은 방탄복을 절묘하게 피해서 박혔고 한 발은 목을 맞혀, 경독맥을 끊었다.
- 만약 프란츠 황태자가 문병을 가지 않았다면?
- 운전기사가 샛길로 가지 않았다면?
- 운전기사가 길을 잘못 들어 후진하지 않았다면?
- 프린치프가 카페 근처에 없었다면?
- 프란츠 황태자가 가슴에 총을 맞았다면?
황태자는 정말 재수 없었다
또한 프란츠 페르디난트를 암살하려고 모인 단원은 7명이었으며, 그중 두 명만이 시도했고, 한 명이 성공했다.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암살조의 마지막 위치였으며 그가 실패했다면 황태자는 그날 생존하였을 것이고 제1차 세계 대전이 늦춰지거나 발생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황태자는 정말 재수 없게도 부상을 당한 수행자 에리크 폰 메리치 중령을 보려고 진로를 바꿔 병원으로 가자고 했는데, 아무도 이걸 기사에게 이야기하지 않아 갈림길에서 지나쳐 버린 기사는 다시 후진했는데 마침 후진한 곳이 암살범 프린치프 정면이었다.
오스트리아의 운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한편 역사가 존 키건은 제1차 세계 대전을 불필요한 전쟁으로 규정했고 이외에도 "사라예보 사건이 세계대전까지 유발할 이유는 없었다"는 의견도 있다. 그리고 오스트리아가 사라예보 사건이 아니라면 제1차 세계 대전에 참전했을지 의문이다. 왜냐하면 프란츠 페르디난트 황태자는 평화를 추구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다른 쪽으로 1차 세계대전이 터졌다면 오스트리아의 운명은 많이 달라졌을 것이다. "혹시 오스트리아와 독일이 전쟁을 빨리 일으키기 위해 일부러 이 암살을 계획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기기도 한다.
사라예보 사건 결말
사라예보 사건의 결말은 이렇다. 암살범인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초주검이 되도록 구타를 당한 뒤 감옥으로 이송되었고 이후 감옥에서도 대우를 못받으며 복역 생활을 하다가 결핵성 척추증으로 오른팔을 절단하고 제대로 된 치료도 받지 못해 사망했다. 사망 당시 몸무게는 40kg 미만. 결국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권총 한 자루와 총알 두 발은 유럽 대륙의 수백만 명의 목숨을 빼앗아가는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이 되었다. 그리고 이 전쟁의 영향으로 그 뒤의 제2차 세계 대전이 또다시 발발하는 안타까운 일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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