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조 도키무네는 몽골의 침략을 두 번 막아낸 일본인입니다. 물론 몽골과 고려의 연합군인 여몽연합군이 훨씐 강하였지만, 일본에서 큰 태풍이 2번이나 불어 몽골의 침략을 두 번 막아내었습니다.
호조 도키무네 소개
호조 도키무네는 1251년 가마쿠라 막부의 최고 권력자 호조 가문의 둘째로 태어났습니다. 불과 18세에 일본의 정점에 오른 인물이죠. 그러나 호조 도키무네의 인생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바로 1268년 초, 고려 사신이 몽골의 국서를 들고 규슈에 상륙하였는데, 몽골의 신하가 되라는 국서였죠. 몽골의 요구를 들어준다면 이는 호조 가문의 붕괴를 뜻했기 때문에 호조 가문은 결사항전을 준비합니다. 즉 나라를 위해서라기보다는 가문을 위해서였죠.
호조 가문과 여몽 연합군의 전쟁
호조 가문의 수장인 호조 도키무네는 몽골의 요구를 계속 거절하였고 마침내 몽골에서 원나라를 건국한 원나라 세조는 일본 침략을 본격적으로 시작합니다. 사실상 고려는 몽골에 굴복해 부마국이 된 상태로, 반식민지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이과정에서 막대한 양의 식량과 병선 건조를 위한 나무가 차출되어 고려 백성들은 심한 고통을 받았습니다. 하여튼 일본의 최고 권력층인 호조 가문과 대제국 원나라의 전쟁이 마침내 시작되었습니다.
1274년 음력 10월, 마침내 몽골과 고려 연합군이 대마도 앞바다에 나타났고 무려 전선 900척, 병력 수는 4만 명 이상에 달하는 대규모 군대였습니다. 대마도는 단 반나절만에 여몽연합군 손에 떨어졌으며, 대마도를 정복한 여몽연합군은 곧 이키 섬에 상륙해 마찬가지로 단 하루 만에 섬을 장악했습니다. 이키 섬을 점령한 몽골군은 잔인한 학살과 약탈을 벌였으며, 이로 인해 백성들은 동굴로 도망가 살아야만 했습니다.
신풍으로 몽골의 침입을 막아내다
호조 가문의 핵심부대인 가마쿠라 막부군도 여몽 연합군에게 연달아 패배하기 시작하며 절체절명의 순간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곧 규수가 여몽연합군 손에 들어갈 위기였죠. 그러나 정말로 하늘의 운이 존재하는지 태풍이 불어 지속인 피해를 입었고 가마쿠라 막부 군의 증원을 우려해 연합군을 철수하였습니다. 이렇게 일본의 호조 가문은 몽골의 1차 침입을 저지하였죠.
1281년 음력 5월, 다시 한번 여몽연합군이 고려를 출발하였고 이번엔 무려 15만명에 달하였습니다. 하지만 일본 또한 준비를 단단히 하였으니, 온갖 성벽과 돌 벽등 방어시설을 갖춰 놓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렇게 공성전이 벌어지던 중 신풍이라고 불리는 태풍이 또 불어서 여몽연합군은 막대한 타격을 받습니다. 1차 원정과는 달리 여름철이라 당연한 결과이기도 하였죠. 이후 몽골은 일본의 침략을 포기하게 됩니다.
몽골을 막은 호조 도키무네의 죽음
대제국 몽골의 침략을 신풍의 도움이 있었지만 모두 막아낸 호조 도키무네였지만 결과는 좋지 않았습니다. 보통 일본에서의 전쟁 양상은 새로운 영토를 정복해 지도자가 부하들에게 영토를 나눠주고 영주로 임명하는 것이 보통이었지만, 몽골의 침략은 철저히 방어전이었기에 논공행상 문제와 지속적인 국방비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호조 도키무네는 1284년 34세의 나이로 요절합니다.
호조 가문의 몰락을 막기 위한 결사항전이었지만 결국 호조 가문을 멸문의 길로 걷게 만든 아이러니한 역사 이야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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