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그의 부인 호엔베르크 여공작 조피가 세르비아 민족주의 단체에 의하여 수도 사라예보에서 총격을 받은 사건이다. 오늘은 제1차 세계 대전의 원인인 사라예보 사건을 소개하겠습니다.
사라예보 사건의 발단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추정 상속인이었던 프란츠 페르디난트가 사라예보를 방문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서 사건의 발단이 되었습니다. 가브릴로 프린치프는 19세의 젊은 세르비아 민족주의 혁명가였는데 이 소식을 접한 뒤 그의 학생 혁명과 동지들과 함께 암살 음모를 계획하게 됩니다.
황태자 부부 암살
밀랴츠카 강 인근에 있던 가브릴로 프린치프의 동료 혁명가 중 하나인 네델코 차브리노비치가 던진 폭탄이 황태자 부부를 맞출 뻔했으나, 운전사가 무언가 날아오는 것을 감지하고 차의 속도를 급하게 높이면서 폭탄은 뒷바퀴에 맞고 튕겨 저 나가 뒤 따라오던 차의 밑에서 터져 엉뚱한 사람들이 16명이나 중상을 입었지만 황태자 부부는 다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프란츠 페르디난트는 자신 때문에 수많은 인명피해가 생긴 죄책감에 지역 병원에 방문하기로 하고 그 외 모든 일정을 취소합니다. 원래는 운전사에게 바뀐 경로를 말해 다른 길로 가야 했으나, 실수로 말하지 않아 길을 잃었고 라틴 교 인근의 골목에 숨어 있던 프린치프가 달려 나와 FN M1910 두 발을 사격해 황태자 부부를 암살하는 데 성공합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최후통첩
암살범인 프린치프 또한 사실은 세르비아 국적은 가지고 있지 않았으며 사건이 발생한 사라예보가 실질적으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영토였으나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이를 명분 삼아 세르비아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하기로 결심하였고 동맹이었던 독일 제국의 지원 약속을 받은 뒤 7월 23일 세르비아 정부에 다음과 같은 내용의 최후통첩을 보낸 뒤 48시간 내로 답변하라고 요구합니다.
1. 모든 반 오스트리아 단체를 해산할 것. 2. 암살에 관련된 모든 자를 처벌할 것. 3. 반 오스트리아 단체에 관련된 모든 관리를 파면할 것. 4. 오스트리아 관리가 세르비아로 입국해 이 사건과 관련된 이들을 조사하는 것을 허용할 것. 이 최후통첩의 목적은 선전포고를 선포할 수 있게 만드는 빌미를 만들기 위해서였으며, 뻔뻔히 내정간섭을 대놓고 드러내며 수용 불가능한 요구를 하였습니다.
제1차 세계 대전 발발
세르비아 정부도 이를 간파해 1~3 항 까지는 자존심을 버리고 수용하려고 했으나 4항만큼은 수용할 수 없었기에 결국 거부하였습니다. 이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은 독일 제국의 지원을 받으며 세르비아에 선전포고를 하였습니다. 동시에 독일 제국은 러시아 제국과 프랑스에게 최후통첩을 보낸 뒤 러시아 제국에게 선전포고를 하였고 마침내 유럽 열강들이 서로에게 선전포고를 감행하면서 제1차 세계 대전이 발발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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