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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

미얀마 민족갈등이 심한이유

by 유니 히스토리 2022. 5.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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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미얀마가 개판이 난 이유

미얀마 정치가 아웅산 수치

미얀마에 대한 뉴스가 요즘은 덜하지만 작년 전까지만 해도 대단했습니다.

군부가 쿠데타도 일으키고 아웅산의 딸 아웅산 수치이야기도 나오고 말이죠.

아웅산 수치는 미얀마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영웅으로 추대받는 아웅산의 딸입니다.

근 100년전까지만 하여도 미얀마는 영국에서 식민지를 당하고 이후 일본에서도 식민지를 당하였죠.

이러한 혼란한 상황속 미얀마 군대의 설립자이자 독립운동을 한 사람이 아웅산입니다.

 

이분이 미얀마에서 얼마나 대단하냐면 대한민국의 전두환 전 대통령이 미얀마와 외교를 하러 갔을 때

필수적으로 갔던 곳이 아웅산의 묘소였습니다. 영국 사람이랑 결혼하고 평범하게 살던 아웅산 수치가

유명해질 정도면 미얀마에서 얼마나 대단한 사람으로 평가받는지 아실 수 있습니다.

 

미얀마에서 민족 갈등 심한 이유를 알아보기 위해서 잠시 두 사람을 알려드렸고요 민족 갈등이 심한 이유 중

하나는 바로 미얀마에서 소수민족들이 135개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중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65% 정도로 버마인들이고 나머지가 소수민족들입니다.

미얀마에서 불교인들이 가장 많은데 불교인들 대부분이 버마족들입니다.

 

그리고 정치인들은 가장많은 버마족들의 호응을 얻어 권력을 잡기 위해서 버마족들에게 엄청난 우대정책들을

펼치기 시작합니다. 이렇게 소수민족들을 억압과 고통의 세월을 보내게 됩니다.

 

2. 버간 왕조

미얀마 중앙집권국가 바간왕국

1044년 중앙집권과 비슷한 국가 바간 왕국이 세워지게 되는데 버마족 중심의 국가였습니다.

위에서 언급했다시피 버마족 중심의 버마족을 위한 국가였고 소수민족들을 차별하는 나라였습니다.

다민족 국가에서 차별과 멸시로써 정책을 펼치면 당연히 내분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 한반도에서도 다양한 국가가 있었지만 통일신라, 고려는 어떻게 서든 그들을 포섭하려고

다양한 포섭 정책을 펼쳤고 이렇게 하나의 국가에서 잘 지낼 수 있었던 것입니다.

 

3. 영국령 인도제국의 주

영국령 인도의 주 버마

이후 꽤나 융성하고 강력했던 버간 왕조는 무너지고 1862년부터 1937년까지 영국의 침입을 받고

영국령 인도제국의 하나의 주로써 행정구역으로 편성됩니다.

세계의 분쟁지역을 보고 문제의 원인을 영국이라고 찍으면 반은 맞다는 말이 있듯이

여기서도 영국이 저지른 만행으로 인해 미얀마에서는 더욱 크게 분열이 시작됩니다.

당시 영국은 미얀마를 효율적으로 통치하고 자기들 입맛에 맞기 하기 위해 기존의 버마족들을

포섭하기보다는 그들에게 억압받던 수많은 소수민족들에게 접근합니다.

 

소수민족들아 너희들 그동안 버마족들에게 핍박받고 힘들었던 거 알아 너희들에게 힘과 권력을

줄 테니 나랑 같이 잘해보지 않을래라고? 미얀마에서 편 가르기 정책을 펼친 것입니다.

당연히 수백 년 동안 억압받던 소수민족들을 손을 잡았고 그동안의 울분을 토하며 버마족들을

탄압하고 권력을 공고히 해나가며 영국의 뜻대로 흘러가게 됩니다.

이때부터 서양 종교인 기독교 등 다양한 종교도 들어오고 버마족들이 믿던 불교도 탄압하기 시작합니다.

 

어떻게 보면 소수민족들이 영국과 손잡은 배신자 매국노라고 보이겠지만 그들이 살아온 울분의 세월을

보자면 버마족들이 소수민족들에게는 학살자며 공포 의대상이며 분노의 대상이지 않았을까요?

 

4. 1900년대 초 1차 세계대전 끝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우드로윌슨의 민족자결주의

영원할 거 같던 그 강력한 대영제국도 1차 세계대전을 기점으로 몰락하기 시작하며 미얀마는 다시

폭풍의 바람이 불게 됩니다. 소수민족들을 그동안 영국을 등에 업고 권력을 잡았었는데 이제 그들

스스로 일어서야 하는 상황이 왔기 때문이죠. 게다가 우드로 윌슨의 민족자결주의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미얀마 내에서 억압받던 버마족 사이에서 민족주의와 불교 즉 종교와 민족주의가 합친 불교 민족주의가 나오면서

소수민족과의 갈등은 더욱 깊어지기 시작합니다.

이때부터 버마족 출신인 아웅산은 영국으로부터 독립하려고 나섭니다. 더군다나 대공황으로 힘든 시기였기에

버마족에서 상당히 유명인사가 되기 시작하죠.

 

5. 독립하는 버마족 중심의 다민족 국가 미얀마

아웅산 미얀마 독립운동가

당연히 눈엣가시였던 아웅산은 영국군으로부터 추격을 받기 시작하고 아웅산은 겨우겨우 모르는 배에 타서 도망갈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역사의 재밌는 점이랄까요 신기하게도 중국 푸젠성 샤먼시로 가는 배였습니다. 당시 푸젠성은 일본이 중국과 싸우며 정렴했던 도시입니다. 그런 상황 속 아웅산은 일본군 대령 스즈키 케이지를 만나게 되고 도와달라고 호소합니다. 스즈키를 일분 군부에 보고를 올리게 되고 영국령 미얀마를 원했던 일본은 옳다구나 적극적으로 도와주죠

이에 아웅산은 감복하여 일본으로 가서 천왕 제도와 군국주의 그리고 일본어를 열심히 배우기도 합니다.

결국 영국은 물러나고 아웅산과 일본제국이 미얀마를 다시 얻게 됩니다. 아웅산은 기뻤는데 예상과는 달리 이제는 영국 대신 일본이 그냥 미얀마를 정복해버린 것이 돼버리고 이때부터는 일본과의 독립전쟁을 시작합니다.

 

그 후 일본이 미국에 선전포고를 하는 태평양전쟁이 시작되고 조선이 당했던 것처럼 강제징집 위안 부문 제등 상당히

굴욕적이고 분노스러운 시기를 보내죠. 그리고 우리가 알고 있듯이 일본은 미국에 패망하였고 아웅산은 미얀마에서 독립운동가이자 영웅이 됩니다. 그렇게 정권을 잡던중 아웅산은 암살을 당하고 그의 시대는 끝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게 미얀마인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정황을 보자면 아웅산은 일본에서 배운 군국주의 천왕 제도를 통해

미얀마에서 독재를 하고 싶어 했을 걸로 짐작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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