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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현대사

1923년 어린이날 탄생, 방정환 선생님

by 유니 히스토리 2022. 5.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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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탕이와 초장이는 어린이날에 오순도순 손을 잡고 놀이공원으로 놀러 갔습니다. 얼마 후 난생처음 생지옥을 경험하게 되었습니다. 파김치가 되어 집으로 돌아오던 알탕이와 초장이는 문득 궁금한 것이 생겼습니다. 어린이날은 언제부터 만들어진거지? 어린이날 하면 빼놓을 수 없는 방정환 선생님은 누구인걸까?

어린이날 탄생 배경

어린이 부모에게 수동적인 존재

수동적인 아이

지금으로부터 백 년 전까지만 해도 어린이는 부모에게 순종적으로 따라야 하는 매우 수동적인 존재였습니다. 성숙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어른들은 어린이를 함부로 대했고 심지어 학대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이런 상황은 선진국이라고 불리던 서양 국가들도 마찬가지였는데요 산업혁명 시기에는 수많은 어린이들이 푼돈을 받으며 공장에서 하루 12시간이 넘도록 일을 해야 했습니다. 이를 안타깝게 여기고 바꿔야겠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우리 한국에서는 대표적으로 방정환 선생님이셨습니다.

 

방정환 선생님과 어린이날

방정환 선생님은 1899년에 태어나 아버지의 영향으로 인간평등을 지향하는 천도교를 접하고 관련된 일을 하면서 인간 평등의 사상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천도교는 동학에서 내려온 종교이며 '사람이 곧 하늘이다'라는 사상으로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보았고 어린이와 여성의 인권에 많은 관심을 가졌습니다.

 

1919년 독립만세운동에 참가했던 방정환 선생님은 1921년 김기전, 이정호와 함께 천도교소년회를 조직하여 본격적인 어린이 운동을 시작하였습니다. 1922년에는 5월 1일을 어린이날로 정하고 전단을 뿌리는 행사를 하였고 1923년에는 정식으로 제1회 어린이날 행사를 치렀습니다.

 

이날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날의 취지를 밝힌 여러 글을 발표하였는데 아동의 권리를 처음 알린 <아동의 권리에 관한 제네바 선언>이 1924년이기 때문에 방정환 선생님의 글은 세계에서 가장 먼저 아동의 권리를 선포한 것으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방정환 선생님은 어린이를 미성숙한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소중한 인격체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존중의 뜻이 담겨있는 어린이란 말을 사용하기 시작했고, 어린이에게도 존댓말을 쓰자고 주장했습니다.

1924년 제네바 선언

 

어린이날 탄압

책을 만들 때에도 어린이의 눈높이에 맞는 동화와 잡지를 만드는데 노력하기도 하였습니다. 어린이날은 1927년부터 5월 첫째 일요일로 날짜를 바꾸어 치르다가 1939년 일제의 탄압으로 중단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다가 광복 후 1946년 5월 5일 어린이날이 다시 부활되었고 1957년에 대한민국 어린이 헌장이 제정되었으며 1970년 대통령령으로 공휴일 되었습니다. 

어린이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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