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제의 건국
백제는 기원전 18년 부여와 고구려에서 내려온 이주민과 한강 유역의 토착 세력이 결합하여 성립되었으며, 한강 유역의 위례성(한성)을 도읍지로 하여 건국되었습니다.(도읍지 : 한 나라의 수도) 이는 주몽의 아들 온조가 위례성에 건국하였다고 전해지는 '삼국사기'의 기록과 왕족의 성씨를 부여씨로 하였다는 점, 서울 석촌동의 백제 초기 무덤 양식이 고구려 돌무지무덤 양식과 유사한 점 등을 통해 짐작할 수 있습니다.
2. 백제의 성장배경
백제는 비옥한 한강 유역을 중심으로 농경문화와 철기문화가 발달하였고, 바닷길을 통하여 중국의 선진 문화를 받아들이기에 유리하였습니다. 백제는 이러한 지리적, 문화적 이점을 바탕으로 빠르게 성장하였습니다.
3. 3세기 중엽 고이왕
3세기 중엽 고이왕에 이르러서는 형제 상속을 통해 왕위 계승이 이루어졌으며, 율령을 반포하여 중앙 집권적 국가 통치를 위한 기준을 마련하였습니다. 또한, 관제를 정비하여 6 좌평제를 실시하였는데 내신좌평은 왕명 출납을, 내두좌평은 물자와 창고를, 내법좌평은 예법과 의식을, 위사좌평은 숙위 병사를, 조정좌평은 형벌과 송사를, 병관좌평은 지방의 군사에 관한 일을 맡게 하였습니다.
또한, 16관등을 마련한 후, 백관의 공복을 제정하여 6품 이상은 자줏빛 옷을 입고 은 꽃으로 장식하게 하였으며, 11품 이상은 붉은 옷을, 16품 이상은 푸른 옷을 입게 하였습니다.
고이왕은 밖으로는 북쪽의 낙랑, 대방군과 싸우고 남쪽으로는 마한의 목지국을 제압하여 한강 유역을 장악하였으며, 중국과의 교류를 통해 발전된 문물을 수용하는 등 적극적인 대외 확장을 하였습니다.
4. 4세기 중엽 백제 전성기 근초고왕
이후 4세기 중엽 재위에 오른 근초고왕은 왕위의 부자 상속을 확립하여 왕권을 더욱 강화하였습니다. 또한, 마한의 남은 영토를 정복하여 지금의 호남 곡창지대를 확보하고 남해안까지 진출하였으며, 남동쪽으로는 가야의 세력권이었던 낙동강 유역까지 영향력을 행사하여 왜로 가는 교통로를 확보하였습니다.
이어 북쪽으로는 고구려 평양성을 공격하여 고국원왕을 전사시키고(371), 황해도 일대를 차지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로써 백제는 황해도와 강원도 일부, 경기도, 충청도, 전라도를 포함하는 넓은 지역을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막강한 수군력을 바탕으로 중국 남조의 동진과 교류하여 선진 문물을 수용하였고, 왜의 규수 지방과 활발히 교류하였으며, 중국의 요서 지방에 진출하는 등 활발한 대외 활동을 펼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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