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백제의 선진문물 수용 및 문화
백제는 일찍부터 한강유역을 통하여 중국의 선진문물을 빠르게 받아들였습니다. 이렇듯 한강유역을 차지하는 국가가 삼국시대의 주도권 또한 가졌다고 보시면 되겠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와 유사하게 문화적인 기풍이 씩씩하였으며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했습니다. 백제의 지배층은 왕족인 부여 씨와 8성의 귀족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이들은 중국의 역사책을 즐겨 읽었고, 관청의 실무에도 뛰어났으며, 투호, 바둑, 장기 등의 오락을 즐겼습니다.
2. 백제의 엄격한 형벌
백제는 형법의 적용이 엄격하여 도둑질한 자는 훔친 물건 값의 2배를 물게 하고 귀양을 보냈으며, 반역한 자나 전쟁에 패한 자 , 살인한 자는 목을 베는 사형에 처하였습니다. 또한, 관리의 뇌물 수수나 공금 횡령 시 3배를 배상하게 하고 죽을 때까지 금고형에 처했습니다.
3. 백제의 지식인 박사
백제는 학문의 토착화를 위해 독자적인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특히 유학 경서에 능통한 사람에게는 박사의 칭호를 주었는데, 그중 역경, 시경, 예기, 춘추 등 오경에 능통한 사람을 오경박사라 하였습니다.
4. 백제의 천문학
삼국 시대는 농경 사회에서 천문 현상의 중요성을 인식하였습니다. 이에 천문 관측을 중시하고 발달시켜 왕의 권위를 하늘과 연결시키고자 하였습니다. 삼국사기에는 일식, 월식, 혜성 등 다양한 기상 이변 기록이 남아있습니다. 백제는 이를 연구하기 위해 역법 전문가인 역박사와 천체와 기상을 관측하는 일관 등의 기술관을 배치하였습니다.
5. 백제 의학 박사 및 역사책 서기
또한, 의학 업무를 담당하는 관직인 의박사가 존재하였는데, 후기에 이르러 의약의 분립에 따라 의박사와 채약사로 나뉘었습니다. 백제는 고구려와 마찬가지로 역사서를 편찬하였습니다. 백제의 전성기를 이끌었던 근초고왕 때에 박사 고흥이 최초의 역사서인 서기를 편찬하였습니다.
6. 백제의 불교 및 도교
백제는 불교뿐 아니라 도교 역시 발달하였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의자왕 때에 고위직인 대좌평을 지낸 사택지적이 절을 짓고 세운 비석인 사택지적비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비석에서 인생무상의 내용이 담긴 도교적인 색채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해가 쉬이 가는 것을 슬퍼하고 달이 어렵사리 돌아오는 것이 서러워서") 또한 산수무늬 벽돌, 금동 대향로 등을 통해 백제인들의 산천 숭배, 신선 사상을 엿볼 수 있으며, 백제인들이 불로장생과 현세구복을 추구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현세구복 : 죽은 이후가 아닌 현세에서의 안녕과 행복을 기원
요약
백제는 한강유역으로부터 중국 선진 문물을 빠르게 수용했으며, 고구려와 유사하게 말타기와 활쏘기를 좋아하였고 행정능력이 뛰어났다. 형벌은 엄격했으며, 유학에 뛰어난 사람에게 박사라는 칭호를 부여했으며 5가지 이상 뛰어나면 오경박사. 농경사회답게 천문학을 중시했으며 왕권과 연결시키려고 하였다. 근초고왕시기 박사 고흥에 의해 서기가 편찬되었다. 불교는 물론 도교또한 믿었다.
'한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수나라의 고구려 침공 및 살수대첩, 을지문덕 (0) | 2022.07.24 |
---|---|
백제의 건축과 종교 그리고 왜나라와의 교류 (0) | 2022.06.25 |
백제 칠지도 및 침류왕 불교수용 (0) | 2022.06.15 |
삼국시대 백제 건국 및 전성기 근초고왕 역사 (0) | 2022.06.15 |
고구려 전성기 광개토 대왕 최대영토 문자왕 (0) | 2022.06.08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