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한국사

이순신과 권율의 관계와 끊임없는 자기객관화

by 유니 히스토리 2022. 7. 30.
반응형

임진왜란에서 삼도수군통제사로 수군을 이끌었던 이순신과 수원 독왕산선 전투, 행주대첩 등으로 유명한 권율 장군은 류성룡에 의해 선조에게 함께 천거되었다. 이순신과 권율의 관계와 끊임없는 자기객곽화에 대해 소개하겠습니다.

 

 

 

류성룡에 의해 이순신과 권율은 함께 천거되었다

서애 류성룡에 의해 선조에게 이순신과 권율은 함께 천거되었다. 비록 이순신은 수군, 권율은 수군으로 배치되어 같이 군 복무를 하지는 않았지만 류성룡 덕분에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이후에도 서로 서신을 주고받았다. 이순신이 한산도 대첩 등으로 한참 명성이 높아지고 있을 때 권율에게 편지를 써서 자기가 갖고 있는 함포 중 몇 개를 떼어다 권율에게 한 번 써보라고 죽었고 권율은 이렇게 이순신에게 받은 여러 가지 무기들을 갖고 다니다가 행주산성에 주둔하게 되었다.

 

이순신과 권율은 서로 돕고 돋는 관계였다

권율

그리고 벽제관에서 이시다 미츠나리, 깃카와 히로이에, 우키타 히데이에가 이끄는 일본군이 쳐들어오자 이순신이 준 포를 이용해 일본군을 크게 물리친 싸움이 바로 행주 대첩이다. 이순신이 고니시 유키나가의 계략으로 조선 조정에 파견된 간첩 요시라가 주장한 것에다가 원균이 정치적 욕망으로 사기 치는 주장을 밀어붙이는 윤근수, 윤두수 형제와 김응수에 의해 삼도 수군통제사 관직을 빼앗았습니다.

 

참수당할 위기에 몰렸을 때도 권율은 인원익, 정탁과 등과 힘을 합쳐 백의종군으로 풀려나게 하는데 일조했고, 이순신이 자기 휘하에서 백의종군하라는 어명이 떨어지자 무밭을 가꾸게 하는 듯 여러 면에서 이순신의 편의를 봐주었다. 이렇듯 이순신과 권율은 서로 돕고 돕는 관계였다.

 

이순신과 권율의 불화 및 자기 객관화

이순신

하지만 언제까지나 줄곧 권율과 사이가 좋기만 한 것은 아니었는데, 전라도 일대에서 수군 병력의 유지를 위해 육군에 병력이 차출되는 것을 반대해 마찰을 빚은 적이 있다. 그리고 2008년 새롭게 발견된 난중일기의 내용에 따르면 권율을 조금 돌려 말하는 구절이 있는데, 을미년 난중일기 32일 차에는 권율에 대해 "근거 없이 망령되게 고한 일이 많았다. 그런데도 총사령관의 지위에 둘 수 있는 것인가. 괴이하다" 등의 기록이 있으며, 이순신과 권율의 불화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하지만 이것은 수군과 육군과의 인원 차출 등 공무에 관한 견해 차이에서 기인된 것이지 마냥 악감정만 있다고 보긴 곤란하다. 이순신이 아주 싫어한 장수는 원균이 유일하다. 이순신은 당대는 물론이고 후대 사람들이 보기에도 지나쳐 보일 정도로 사람에 대한 평가에 엄격해서, 난중일기를 보면 칭찬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이는 자기 자신도 마찬가지라 이순신은 남들을 평가하는 잣대보다 더욱 엄격하게 자신을 바라보았고, 이러한 성격 때문에 이순신에 대한 자료 중 이순신에 대해 제일 비판적인 자료가 다름 아닌 이순신이 직접 쓴 난중일기다. 자기학대가 아닌가 싶을 정도록 끊임없이 자기 객관화하였다.

반응형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