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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

야인시대로 유명한 조선의 주먹 김두한

by 유니 히스토리 2022. 5.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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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주먹 김두한

김두한은국회의원이자 조선 최고의 주먹이었으며 혼란스러웠던 대한민국의 일제강점기부터 근현대사를 살아온 인물입니다. 야인시대에서 김두한은 일본 패에게 팔려가는 조선인 여자를 구해주고 일제의 횡포로부터 조선 상인을 보호하는 의적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홍길동이나 전우치처럼 의적으로 묘사되고 있는데 실제로도 그랬을까요? 김두한은 독립운동가 김좌진 장군의 아들이며 실제로 일제강점기 때 조폭으로 활동하였습니다.

 

그렇지만 의적까지는 아니였던거 같습니다. 자신의 실리만을 따라 행동하는 매우 현실주의자에 가까웠으며 당대 주먹계에서 알아주는 조폭 중 하나일 뿐이었다고 많이 평가됩니다. 여러 가지로 친일파다 뭐다 논란은 많지만 증언에 의한 이야기일 뿐 실질적인 증거는 없습니다. 그리고 박정희 대통령 시절 의원직을 내려놓을 각오로 국회 오물투척 사건까지 일으키면서 감옥에 투옥되고 김좌진 독립유공자 연금을 매달 고아원에 기부하는 등의 선행을 행하기도 하였습니다.

 

실제로 이승만과 박정희 정부의 개가 되어 살기를 거부하고 맞서 싸웠던 인물입니다. 조폭으로 나쁜일도 하였지만 독재에 저항하고 고아원에 기부하는 등 선악이 왔다 갔다 하는 입체적인 인물인 거 같습니다. 본인의 회고에 따르면 13살이 되던 해 집안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서울에 올라와 거지패에게 잡혔다던가 여러 가지 이야기들이 있지만 이 또한 정확한 이야기가 없습니다. 어찌 되었든 종로와 파고다공원 근방에서 주먹 하나만으로 입지를 다져 18살 서울에서 가장 큰 극장이었던 우미관 일대를 제패하여 서울에서 가장 악명 높은 사람이 되었습니다.

 

김두한을 따르던 인물들은 이 당시를 일본 야쿠자의 침입에 맞서 싸운 민족적인 주먹패가 김두한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조선인들을 일본으로부터 보호했다는 이야기인데 이거만 보면 정의를 위해 싸우는 의인처럼 보이는데 사실 이 보호는 무조건적인 선한행동이 아닌 보호비를 받은 자본주의가 보인 행위였습니다. 김두한 또한 본인이 그들을 보호했다는 표현을 쓰지 않고 세금을 받았다고 이야기한 적이 있습니다.

 

김두한은 허풍이 심한편이었는데 자신이 구마적과 신마적 등의 윗 세대를 제패하고 자신이 최고인 것처럼 말하는데 사실은 그 당시 구마적, 신마적이라는 사람들은 유흥가 건달들이지 범죄조직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아니었고 사람들 삥 뜯고 공짜술 얻어먹는 그런 류의 양아치였다고 합니다. 거기다가 40년대에는 일제의 깡패 단속이 심해졌기 때문에 시대가 어수선해져서 자연스럽게 물러나는 그런 시기가 왔는데 김두한은 징용 문제도 어영부영 넘겨 혼자 경성에서 세력을 유지할 수 있었습니다.

김두한

 

정치인 김두한

김두한의 전성기는 조폭시절이 아닌 정치인이 되었을때입니다. 단순히 조폭으로 조금 유명했다면 역사에 이름을 남기지는 못하였을 겁니다. 해당 직후 복잡한 정국 하에 이런저런 단체들을 오가다가 극우로 전향하여 극우테러활동의 대표적인 기수로써 활동합니다. 사상에 대한 지식은 없었고 김두한 본인의 주장에 따르면 부친 김좌진 장군이 좌익계열에게 암살당한 일의 속사정을 이때 알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김두한에게 중요한것은 돈과 권력이었습니다. 그 당시의 부자들과 일제 관료 출신들은 우파 단체를 지원하였습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일제 관료 출신들이 지원한 우파들은 대부분이 독립운동가였습니다. 이 당시 김두한 씨의 활동으로는 남로당 전당대회 습격, 박헌영 신불출 심영 등등의 인물 암살 미수들이 있습니다.(심영은 고자가 되어버립니다. 야인시대 내에서는 내가 고자라니가 유명하죠.) 

 

김두한에 주장에 따르면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한 애국심이라고 하지만 사실은 정국을 틈타 자신의 특기인 폭력을 바탕으로 테러활동에 앞장서 정치적인 입지와 금전적 이득을 챙긴 행위라고 보시면 됩니다. 6.25당시에는 부산으로 피난을 가고 전쟁이 끝난 후 37살에 국회의원이 됩니다. 당시 김두한의 이야기는 신문의 단골 소재이기도 하였습니다. 이후 공천을 받지 못해 반 자유당파가 되었습니다. 국회에서 깽판을 쳐서 자유당에서 제명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김두한을 보시면 당시 대한민국의 혼란한 상황을 알 수 있습니다. 이후에 신기하게도 다시 자유당에 재입당을 하지만 개헌이후에 개헌에 반대하며 깽판을 쳐서 다시 제명됩니다. 국회의원으로 활동할 당시에도 조폭시절 습관이 남아있는지 부정선거 혐의에 부동산 불법매매 혐의, 살해 미수까지 그리고 자신을 화나게 하였다고 김관철에게 위협사격까지 다양한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특히 57년에는 큰 사건이 터집니다.

김두한과 가족들

 

김두한 오물투척 사건

국회의원을 몰라본다며 김두한은 국세청장을 두드려 패버립니다. 그 결과 다음 선거에 낙선하였지만 8년 후에 다시 재선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당시 박정희 대통령은 정치 조폭들을 청소하기 시작하여 어떤 국회의원도 김두한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가 1966년 국회 오물투척 사건이 일어납니다.

 

박정희 정권에 반대하며 똥이나 먹어라와 함께 욕을 말하며 오물을 투척합니다. 이를 김두한 오물투척 사건이라고 부르며 인기를 얻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감옥에 투옥되고 석방된 후에 67년 신민당의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합니다. 이후에는 별다른 일없이 살다가 72년 고혈압으로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김두한 오물투척 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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